텍스트/생각과시

[생각과수필] 나는 젊은 아빠

새벽3시. 2019. 7. 9. 18:59

올 봄 아빠와 둘이 소주 각 일병 하던 날,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부도 명예도 갖추지 못했고,

뭐하나 남부럽게 산 건 없지만 딱 하나 자식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건

삶에서 내 스스로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그거 하나면 그래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지.

남들이 나를 괄시하고, 네 엄마를 가난에 힘들게 하고, 네가 나를 미워하는 게

가슴은 아팠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내 삶을 기억하는 순간부터 한 갑자가 지나고 이렇게 보니까

그게 꼭 옳은 삶이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더라.

때로는 불의에도 숙일 줄 알고, 때로는 아닌것을 알면서도 편을 들어줘야하고

또 때로는 속일줄도 알아야 했던거지.

네가 내 성격을 꼭 닮아서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조금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아라."

 

최근 넉달 넘게 일과 관련해 참 괴로운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어제, 아버지의 이 말이 떠올라

그 자리를 견디고 온 후 새벽 내내 깨어 무수히 많은 생각과 갈등을 했다.

그리고 나는 젊은 우리 아빠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조차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에 순응하면서,

어찌 잘못된 사회와 정부를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금은 보다 가난하게 살고, 조금 남보다 낮은 곳에 서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내 눈과 귀와 마음을 감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다.

 

20151104 2251.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