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수필] 식물의 사회성에 관하여
식물을 키우다보면 식물도 외로움을 타는 생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쪽으로 가지를 뻗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사무실에서 키우는 큰 나무화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내 옆에서 1.5미터 가량 떨어져있는 이 나무는 창가는 자신의 뒤에 있음에도
자꾸 내 쪽으로 가지를 뻗어 나의 통행을 방해하였다.
나는 그 나무에 애정을 갖고 있었고 매번 내가 물을 주었으며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예뻐해주고 말을 걸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무가 날 사랑하는걸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통행에 방해가 되어 가지가 뻗은 쪽을 창을 향하게 하면 어느새 또 반대편 가지가
내 머리에 닿을 듯이 뻗어 있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지만,
내가 돌려 놓은 것과 나무다 다시 가지를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 일만 붙여보면다면
이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일같이 놀라워 내가 환상 세계에 와있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무의 이름은 '윌리'다. 이름을 지을 때 딱히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집에서 키우는 가장 큰 화분의 이름이 '윌슨'이라 형제처럼 '윌리'라고 지은 것 뿐이다.
윌리와는 이러한 싸움이 일년에도 몇번씩 되었다. 돌려놓으면 뻗고, 돌려놓으면 뻗고.
그런데 과연 이게 날 사랑해서만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되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사무실의 가장 안쪽 자리에 있었고 윌리도 가장 안쪽인 내 옆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나를 기준으로 대각선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윌리가 가지를 뻗은 것이 공교롭게도 내 머리를 쓰다듬게 되었지만, 그 가지가 향하는 방향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고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공간인 가운데의 휴식테이블이었다.
윌리도 사람들이 주로 있는 쪽이 좋은 것이다. 그 공간은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식물도 사랑을 주고 받는 걸 알 수 있다.
식물이 사람에게 처음 사랑을 받을때는 낯설고 놀라워 잎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관심을 못받은 녀석보다 더욱 잎이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게 사랑을 받기에 반짝이기도 하겠지만 사랑을 주려고 반짝이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그런 반짝임은 신기하게도 먼지가 소복 쌓여도 줄어들지 않는다.
만약 식물에 꽃이 피면 그 향은 관심을 받지 못한 녀석보다 더 진하고 멀리 퍼진다.
꽃도 더 오래 피어있다. 어쩌면 이게 사람이 사랑해준 것에 대한 식물의 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과 식물의 사랑뿐 아니라 식물간에도 그렇다.
식물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식물(말이 이상한가 ㅋㅋㅋ)이란 생각은 바로 여기에서 드는데,
나는 큰 화분위에 작고 귀여운 화분들을 둘러서 올려놓곤 한다.
만약 크기가 어중간하다면 그 주변으로 같이 놓는다.
한참 그렇게 놓고 보면 어느 새 자기들끼리 의지하고 있는게 보인다.
큰 화분의 가지들은 작은 화분이 뻗는 줄기들을 받쳐주어 부러지거나 구부러지지 않게 해주고
큰 화분의 잎들도 작은 화분의 여린 잎들이 다치지 않도록 해를 적절히 가려준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건 그냥 어쩌다보니 이루어진 그늘이고, 줄기가 기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이채롭게 보는 것은 나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소한 내가 키우는 식물들 중에 혼자 떨어져 있는 녀석들보다
같이 의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더욱 생기있고 풍성하다는 것이다.
나는 식물을 좋아해서 집과 회사에서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있다.
그들 각자마다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잎사귀를 만지며 귀여워해 주거나
좀 더 큰녀석들은 나무 기둥을 만져주기도 한다.
아, 갑자기 집에 있는 우리 윌슨이 보고 싶다.
윌슨이라고 이름 붙인 녀석은 내가 '캐스트어웨이'라는 영화를 본 날
선물 받은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