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티씨/내댓말들

[댓글] 하찮다고 여기는 벌레를 죽이는 행위의 끔찍함에 대하여

새벽3시. 2019. 7. 11. 11:19

갑자기 개인 일화가 떠오르네요.

그 때 처음으로 '남자도 벌레를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어느날, 거미가 지나가는데 제가 넘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며

애인에게 빨리 잡으라고 명령을 했죠.

저도 모르게 빨리 잡앗! 이라고 말예요.

애인도 놀라서 작은 눈을 토끼만하게 뜨며 절 쳐다봤어요.

한참 망설이다 그는 어디서 A4용지만한 종이를 찾아오더니

팔만 간신히 뻗어 거미를 스윽 떠내고 밖으로 내보내더랍니다.

저는 그 때,

"아니 또 들어오라고 왜 안죽여?!"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말하길,

"죽이는 건 끔찍한거자나." 라더군요.

그때 확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깨닫게 되기도 했어요.

어쩌면 그는 무서워서 못죽이고 저렇게 말 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그의 말에 막 웃어넘겼는데, 지금은 제가 그렇게 하고 있더랍니다.

예전이라면 살충제(에프킬라 같은 거)를 뿌렸을텐데.

그냥 저도 최대한 밖으로 내보내거나 눈을 감아버려요. 사라질때까지.

죽이는 것이 무서워서이기도 하고, '죽인다.'는 자체가 끔찍하기도 해서요.

 

당신의 말에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사람이 '하찮다'고 여기는 벌레를 죽이는 행위의 끔찍함에 대하여.

인간은 얼마나 끔찍한 동물인가.

인간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가.

 

20151201 2341.

분홍천 -거미를 죽였다, 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