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생각과시

[생각과수필] 아빠의 뒤란 샐러드

새벽3시. 2019. 7. 12. 15:51

지난 주 금요일 밤.
아빠가 늦은 시각에 우리집엘 오셨다.
손에는 배추 한 통만한 크기에 신문으로 둘둘 말은
무엇인가가 투박스레 들려있었다.
"아빠, 연락도 없이 어쩐일이야?"
아빠는 나를 흘끗 보시고는 그 특유의 매력적인,
하회탈보다 더욱 하회탈스럽게 온 얼굴에
쫘악 주름을 만들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그리고 멋쩍은듯이 살콤 혀를 내보이고 웃으셨다.

"아이, 기지배야. 아빠가 딸네 오는데 연락하고 와야돼?"
현관에 서서 자유로운 오른 손가락으로 내 코를 꿰어 떼며 더욱 활짝 웃으셨다.

아빠는 한숨 크게 돌리시더니 내게 왼손에 들린
그 투박한 신문지에 둘둘 만 것을 내미셨다.

"그거, 상추랑 겨자잎이랑 케일이랑 비타민채랑 그 뭐라드라 느이 엄마가 뭐라고 했는데. . . 아무튼 그거야."
나는 신문지를 풀지도 않고 그러냐며 냉장고 야채칸에 넣었다.

"너 샐러드 좋아한다며, 그거 약한번 안준거야. 해먹으라고."
아빠는 내 반응이 그저 그래서 아쉬웠던 것인지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응 알았어, 잘먹을게~~"

아빠는 그 다음날 일찌감치 내려가셨다.

아빠를 홍대입구역까지 바래다드리고 집으로 걸어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그래, 느이 아빠 되게 웃긴다?"
전화를 하자 아빠를 묻더니 이렇게 운을 뗀다.

"아니 글쎄~ 어제 퇴근하고 오더니 밥먹으라니까 밥도 안먹고,
뒤란에 가서 이제 막 싹나서 한번 뜯어먹을까 하고 있던
쌈채소를 싹다 뜯는거야."

엄마는 계속 얘기하셨다.

"그거 뭐하게? 지금 먹게? 하니까 '아니, 지영이 갖다주려고.' 이러면서 밥두 안먹고 뜯더니 그대로 싸가지고 냅다 가버렸어. 허허허."
라신다. 엄마는 너무 황당해서 한동안 현관만 바라봤단다.
그 말에 울컥울컥 했다.

한낮이 되어 아빠가 잘 도착했는지 어떤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아빠, 어제 이 채소 주려고 온거야? 아빠 드시지 그랬어. 내가 내려가면 싸주지."
라고 미안함과 고마움에 말하자

"이제 첨 싹 난게 제일 영양가도 많고 맛도 좋아.
첨 순 난게 네가 언제 내려올 줄 알고 기다려주냐.
그땐 없지. 먹어봤어?"

아직 맛보지 못했지만 나는 아빠가 가신 뒤 바로 해먹었다고,
너무 신선하고 달고 맛있었다고 잘먹었다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우리아빠.
이렇게나 사랑 가득한 우리아빠.

그리고 오늘에서야 처음 냉장고에서 꺼내
그 둘둘 말아놓은 신문지를 풀고 씻어서
그것들만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먹어 본 겨자잎의 알싸한 맛이,
아무맛도 없어 좋아하지 않던 상추 줄기의 달큰함이,
그 외의 것들의 아삭함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사진도 찍어서 보냈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흐뭇함이 담뿍 묻어있었다.

20160502
저녁으로 매우 푸짐했던
아빠의 사랑이 가득한 뒤란 샐러드.

우리아빠는 여전히 딸바보이고
종종 딸 앞에서는 순박해진다.

사랑해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