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시. 2019. 7. 15. 15:57

엄마가 매우 기뻐하셨다.
나와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아빠는 술에 취해 참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런 두 분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바닥에 새털하나를 더 깔아 둔 기분이었다.

나는 빚의 아주 작은 일부를 털고
영수증을 받았다.
은행원은
아주 의기양양해진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지었다.
내가 이 돈을 빌리기 시작했을 때
이 돈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매우 어렸고, 살 날이 많으며, 아직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들어
이자마저 연체하며 불려놓기만 한 빚을 세어보자
덜컥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갚아야지.
정말로 파산해버리기 전에.

콜록콜록, 엄마 나 목이 간질거려.
이리와 감기들려나보다.
엄마는 내 이마를 짚어보고 옷을 벗어 입혀주었다.
아빠는 앞을 서성이다가 자신이 드시려고 챙겨 온
홍삼 두 봉다리 뜯어 데워오셨다.

빚을 갚자고 결심한지 이제 일년이 다 되어간다.
찔끔찔끔 갚아가며 깔아둔 영수증 위로
쉴새없이 크고 작은 추가 약정서들이 날아들었다.

그래도 티끌같은 영수증은 나를 받치고 있다.
나는 완전히 파산하지 않을 것이다.

20160816 0034
빚에 대해 생각하다가.
유유자적 소박소박 사는 인생길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니 부모님이 저 멀리 처져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울컥 하고, 덜컥 겁이 났더랬죠.
이러다 나는 완전히 파산하겠구나.
이제부터라고 갚아야겠다.
이것 저것 생각해도 어찌 갚는게 가장 좋을지 모르겠더랍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부모에겐 큰 효도라지만
무슨 뾰족한 수로 아주 잘 될것이며
자식이 무탈한 것이 또 효도이지만
앞날을 어찌 알겠나 싶더랍니다.
돈을 많이 써서 여행도 보내드리고 좋은것도 사드리고 하고싶지만 나는 돈도 없거든요.
그래서 궁리 끝에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이 같이 있고, 많이 같이 보고, 다니고, 같이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자식과 가까이 있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지만 더 건강이 나빠지지 않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지요. 부모님의 음성과 눈빛에 빚이 자꾸 늘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