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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수필] 검소와 사치에 대해 생각하다가

새벽3시. 2019. 7. 15. 17:48

금은 돌아가셨으나, 내 기억에 오래 기억될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이 어떤 직업과 신분을 가졌었고, 자녀는 어떠했고, 집안은 어떠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내가 출근하는 회사 근처에 사시는 성성 백발의 마른 노인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려 골목을 들어서면, 할아버지는 낡은 옷을 입고 정원을 정리하거나 대문앞을 쓸고 있거나,
더러는 할머니와 함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대문밖에 나와 있으셨다.
나는 늘 그 분을 보며 '참 부지런 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마주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나는 으레 인사를 했다. 그분은 말없이 끄덕이며 미소했다.

어느날, 그 집 대문앞에 차가 한대 섰다. 매우 낡고 낡은 차였고, 오래된 국산차였다.
젊은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뒷자석에 앉은 할아버지를 부축해 모셨다. 나는 '아들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달 전, 할아버지는 지나가며 인사하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셨다.
"내 차를 팔려고 하는데, 혹시 아는 사람 있소?"
마침 나는 알고있는 중고차 딜러가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낡은 차가 생각났다.
나는 딜러에게 그분을 소개해드리며 당부했다.
"할아버지 차가 매우 낡고 오래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잘 부탁해요."
내가 아는 딜러는 서글서글하고 누구에게나 잘 대하는 사람이었기에 믿음이 갔다.

며칠 뒤에 딜러에게 연락이 왔다.
"덕분에 영업이 잘 되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그런분을 아셨어요?"
자초지종을 물으니 이러했다.
그때는 한여름이었기에 약간 누렇게 바래고 늘어진 런닝차림의 할아버지는 자기 차를 보여주었다.
차는 듣던대로 매우 낡았고, 오래된 국산차여서 거의 값어치가 없었고, 고물비 정도 건질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행색이나 차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여 측은하게 여기고 이문 없이 폐차비용을 모두 내드릴 심산이었다.
어쨌거나 소개였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고, 음료도 한잔 사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한 날 차를 가지러 말씀하신 집 앞으로 방문하자 할아버지는 '젊은이가 사람 참 괜찮네.'라고 하시고는
딜러를 데리고 내려가 주차장을 열었다고 한다. 딜러는 너무 놀랐다. 주차장에 차가 8대가 더 있었는데,
처음에 보여주신 차를 제외한 8대의 차는 모두 외제차였고, 구하기 귀한 차들로 값이 매우 나가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제 살 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이 차들이 무슨 소용인가. 내게는 어차피 고물이니
고물비만 주고 가져가게.

 

그 분은 어떤 사람이든 제대로 대하는 제대로 된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많은 딜러들이 찾아와 영업했을 법한 차들을 그 딜러에게 헐값에 주셨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놀랐던것은
그 분이 결코 차림과 같은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나는 그때 또 한번,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 안됨을 느끼고, 그 분께 죄송하고 죄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