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생각과시

소중한 이유

새벽3시. 2019. 4. 10. 12:30

어릴 때 읽은 어린왕자는 지금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구절이 지금은 절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느낌인 좋은 글귀들도 있다.

그 중, 이 구절이 그러하다.

이 부분은 여우가 어린왕자가 왜 장미를 소중해할 수 밖에 없는지 비밀을 가르쳐주 듯 말하는 부분이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왜 내 주변의 많은 부분들이 소중하고 어째서 그것을 잃었을 때 많이 고통스러워했는지.

단지, 소중하기 때문에 잃었을 때 고통스럽다는 것은 억지이다.

 

'왜 소중한지'가 우선 필요하다.

어느날 내가 아끼던 화분이 맥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물을 준지 얼마 안됐는데 그러한 모양새를 하니 햇빛이 부족한가 하여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하지만 그 화분은 곧 타죽었다.

 

그 화분을 처음에 아끼게 된 이유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가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성을 쏟아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고 잎을 닦으며 속살거림을 주고 해를 거듭해 갈수록

나는 화분 그 자체가 소중해졌다. 이미 누가 준 것인가는 잊을 만큼...

 

그런 화분이 죽자 많이 슬펐다.

단지 어느 움직임도, 교감도, 향기마저 없던 이 하잘것 없는 작은 화분에 말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 화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키운 화분이 건조한 철이라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직사광선에 약해 잎이 잘 탄다는 것을

몰랐던 무지함에 많은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빈자리가 허전하여

그 자리를 볼 때마다 화분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과 슬픔이 든다.

 

혹자는, 이런 감정이 너무 감상적인 것은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한낱 풀에게 쏟은 시간과 애정은 내가 '소중함'을 갖게 한

멋진 일인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어느 화분에게 그러한 시간과 애정을 쏟을 것이다.

그리고 또 '소중함'을 소유하게 되겠지.

 

20150515 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