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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수필] 공허텍스트/생각과시 2019. 7. 5. 14:38
이것은 슬픔을 달래주고 아픔을 치유하며 그리움을 추억으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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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5년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가 보아 온 많은 사람들처럼 아둥바둥 살지 않았다.
결코 그들보다 부유해서도 아니고 그들보다 행복해서도 아니다.시련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들도
지나서 떠올려보니 웃을만한 일들이 있었고
자기계발 좀 하며 살라는 동생의 질책을 종종 듣는 등
소위 대부분의 사람이 입에 달고 있는 단어처럼 "열심히" 살지 않았다.
내 인생은 30여 평생
"인생은 한번 사는 것이고 잘살아도 죽을 것이고
잘나도 죽을 것이며 명예로워도 죽을것인데
나라도 내 자신을 괴롭히거나 옭아매지 않고
채찍질하지 않고 보듬어 살겠다"
이런 자세로 일관했다.
한번도 그렇게 산 나의 삶을
후회한적도 안타까워한적도 슬퍼한적도 없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인적 네트워크를 잘 쌓기위해 노력하지도 않았고
연락처를 바꿀 때 조차 바뀌었다 알리지 않고자동 연결만 잠깐 해 놓는 것으로 나의 인연을 끌어왔을 뿐
그 관계에 연연한적도 아쉬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상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고 살았고
크게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아직도 그래 온 삶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아니, 그렇지 않기 위해 그렇지 않다고 뇌까리는게 아니라말그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은 앞서 말했듯이
삶을 단순하고 담백하게 최대한 번뇌없이 즐기고자 함인데
오늘에 이르러서야 내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 이것을 깨닫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이것은
누군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아도, 상대적인 사랑을 받아도..
아니 내가 어떤 인심을 베풀건 사랑을 주건
주변에 사람이 많건 적건, 그 차원의 것이 아니다.
또한 나의 충실한 감정인 희노애락도 이것에는 견줄 수 없이그 크기와 무게가 한없이 다르다.
이것은 언제나 비어있고 비어있으면서도 항상 꽉 차있는오묘한 기억이고 기분이고 기미이다.
이것은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알고 세살바기 아이도 안다.
하지만 그 존재를 깨닫지는 못할 수 있다.
사람들은 때로 이것을 감정과 혼동하고 비교하여 부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감정이 아니다.
순간은 잊을 수 있으나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고떨어내도 금시에 다가오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하지만 피부를 감싸고 있는 것이고우리가 잡고 있는 손과 손 사이에도 머무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비어있기에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고
꽉 차 있기에 담기 위해 비워내야 한다.
때로는 꽉 차 있음으로 내게 아쉬움과 슬픔을 주고때로는 비어있음으로 조급함과 초조함을 준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얼만큼 차있는 것인지 비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어느정도가 내게 적절한 슬픔이고 초조함인지 알 수 없다.
반대로 만약 이게 적절한 수위가 있다면그것이 내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얼만큼을 채우고 얼만큼을 비워내야
내게 가장 알맞은 것인가..
며칠을 두고 사유하고 사유하고.. 또 사유한다.이것은
사람 내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깊으면 이별이 두려워지게 되고헤어지게 되면 만남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해가 뜨기 시작해 정점을 찍고 다시 지는것도,
산 꼭대기에서 줄기줄기 갈라지고 부서지며 흩어진 물들이
다시 모여 강이 되는 것도 같은 것이다.
죽음은 삶이 되고 이별은만남이 되고 잃게 되면 다시 얻게 되니이것과 같은 원리이다.
내가 이것을 깨닫기 시작한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연인과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나는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이미 여러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이별의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잘 아는 탓이다.
사랑의 깊이 만큼이나 이별은 마음의 수렁도 깊었다.다시는 그런 수렁에 빠지고 싶지 않음이 두려움으로 변한 것이다.
떠올리기만 했던 두려움이 어느날 나를 마주했을 때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리움을 함께 데려왔다.
나는 내가 지난날 겪은 그 상처처럼오랜 기간을 헤어나오지 못하며 시름에 잠길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 이것을 깨닫게 되고
슬픔과 아픔, 그리움은 더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다.혹, 나는 두려움을 느낄때마다 비워냈던 것이 아닐까?
아직 다 비우지 못한 탓에 저 셋은 조용히 떠들어 존재를 알리기는 하지만
오히려 두려움만 못했다.이것은
비우면 비울수록 슬픔을 줄이고 아픔을 치유하며
그리움을 추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채우면 채울수록 두려움이 커지고 화가 나며 다투게 되는 것은 아닌가?아직도 난 이것에 대해 깨닫지 못해 답답할 뿐이다.
이것은 그저 작은 사유로 그칠 것이 아니라내가 평생을 지고갈 숙제이다.
한번도, 어느 누구도 경험하면서도 경험한적 없는,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허공의 공기와 같은
이것은 공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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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란 단어를 모르지 않았다. 그동안 공허는 슬픔의 발전이고 우울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사랑이 깊어갈수록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혼란이 왔다.
나는 그 두려움으로 항상 조금씩 비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야 이것이 슬픔이나 우울이 아닌 또 다른 존재임을 알았다.
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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