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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수필] 아빠의 짝사랑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0. 10:49
내가 '이혼'이란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때가 6살이었다.
그 당시 내가 본 엄마는 매우 불행한 여자였고, 그래서 엄마에게 아빠와 이혼할 것을 권했다.
아울러 동생은 내가 책임지고 잘 보살필테니 걱정하지 말고 엄마의 삶을 살라고 말했다.
그런 것으로 보아 나는 '이혼'이란 단어를 매우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다가 나이를 먹고 서른이 좀 넘었을 무렵, 아버지가 실직을 했다.
아빠는 자신의 골방에서 문을 등지고 돌아앉아 어깨와 등을 구부정해서는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 등이 너무 작고 초라해보여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 뒤부터 아빠를 조금은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연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나는 암코양이 마냥 앞발톱을 세워 종종 아빠의 가슴팍을 긁어 높았다.
그러던 날 중 하루는 아빠가 문자로 이렇게 말을 전해왔다.
"지영아, 아빠가 오랬동안 짝사랑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하구나.."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아빠에게 냈던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정신없이 내리는 비처럼 머리를 스쳤다.
나는 한동안 아빠의 얼굴을 볼 엄두도, 목소리를 들을 생각도 못했다.
너무 미안해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안하다고 한번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아빠를 끌어안고 간혹 입을 맞추는 게 다이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빠도 느낄 거라 생각한다.
전과 달리 아빠 딸도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151105 1715.
사무실에서 눈물을 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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