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詩] 송금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5. 17:14
당신과 만난 이날은 쪽빛 한 술 듬뿍 넣은 우유 위로 얕은 먹구름 흩어지는 사월처럼 당신과 만난 이날은 사붓사붓 흔들리는 슬바람이 솟구치는 뜨거움을 재우는 칠월처럼 당신과 만난 이날은 거리거리 알 수 없는 발걸음에 하늘로 쏘아 올린 갈잎의 시월처럼 당신과 만난 이날은 어둑히 조용해도 가만 귀를 들여야 눈발의 춤을 볼 수 있는 일월처럼 당신과 만난 이날을 잊을 수 있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은 아직 못 다 부친 동전이 내 주머니에 남은 까닭으로 당신과 만날 이날은. 20170302 1954 방배 오컬에서 부채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때까지 나는 둘 중 하나였다. 최선을 다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런데 한번은 그러지 못해서 마음을 빚 진 때가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
-
[생각과수필] 그때가 맞았어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5:56
반토막난 집으로 이사를 하기위해 버릴 짐을 최대한 골라내며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20대부터 받은 여러 편지와, 엽서와, 버리지 못했던 선물들과 말라비틀어져 원래의 색상은 짐작도 가지 않는 최초의 꽃이 잡다하게 가득 든 상자가 이 집으로 이사오기 7년전에 포장해둔 그대로, 모서리마다 세월을 끌어안고 있었다. 꽃을 보며, 아 그래 이건 그날 나를 두시간이나 기다리며 샀던 꽃이었지. 기다리는 두시간이 설레고 기대돼서 즐겁기만 했다던 과장섞인 표현과 우쭐우쭐하거나 장난 가득할때 보이는 그 특유의 입모양이 되살아났다. 그래, 이래서 버릴 수 없는거야. 잊고 있던 기억도, 바래버린 추억도 다시 재생할 수 있는건 남겨진 무언가가 있을때 뿐이거든. 나는 다시 그 꽃을 상자에 넣었다. 상자속 작은 박스를 열자 세 사람..
-
[詩] 눈이 나쁜 건 좋은 것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5:39
눈이 매우 좋아서 좋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를 잘 볼 수 있었고 내 눈이 더욱 좋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눈이 나빠서 매우 좋다고 했다. 밤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어 좋고 비록 멀리서 네 얼굴은 흐릿하지만 체향은 깊게 맡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다행이다. 역시나 나는 눈이 나빠서 매우 좋다. 흐릿했던 네 얼굴이라 좋고 간혹 길에서 마주쳐도 보지 못할거라 좋다. 20160225 1950 더이상 맡을 수 없는 향기는 손끝에 느껴지는 형상은 눈보다 깊게 박힌 마음은 언제쯤 무뎌질는지..
-
[댓글] 사랑의 갑을 관계란이티씨/내댓말들 2019. 7. 10. 15:59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박노해의 시군요? 참 좋아하는 시인데ㅎ 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예전에 팔년 구개월을 만난 사람과 헤어질 때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덤덤? 조바심도 없었고 그냥 좀 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죠. 그 사람을 만날 때 누군가가 물었어요. 그렇게 오래 만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적어도 저는 그 사람을 만나는 그 때까지도 설레고 기쁘기만 했으니까. 그 질문을 받고 가만 생각해보니, '사랑해서 누가 더 행복한가' 그 건, 저 자신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이 참 고마웠습니..
-
[생각과수필] 식물의 사회성에 관하여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0. 15:53
식물을 키우다보면 식물도 외로움을 타는 생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쪽으로 가지를 뻗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사무실에서 키우는 큰 나무화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내 옆에서 1.5미터 가량 떨어져있는 이 나무는 창가는 자신의 뒤에 있음에도 자꾸 내 쪽으로 가지를 뻗어 나의 통행을 방해하였다. 나는 그 나무에 애정을 갖고 있었고 매번 내가 물을 주었으며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예뻐해주고 말을 걸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무가 날 사랑하는걸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통행에 방해가 되어 가지가 뻗은 쪽을 창을 향하게 하면 어느새 또 반대편 가지가 내 머리에 닿을 듯이 뻗어 있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지만, 내가 돌려 ..
-
[詩] 흐린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0. 11:03
지금처럼 온 사방이 흐리던 날 바람조차 조용히 사그라들던 날 골목마다 피어난 퀘퀘함도 쓸려가던 날 그칠줄 모르고 흐르는 너를 피할 길 없어 온몸을 적시며 무작정 뛰었던 순간들 몰아치는 숨을 내뱉고 눈을 들자 발밑의 진 잎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종착지를 알지 못해 휘돌던 바람 불던 날 비질에 한 데 모이면 더욱 빛깔 곱던 날 어느 발에 들어 비명을 지르던 해 좋던 날 계절처럼 하나 둘 떼어낸 자리에 생긴 딱정이 그 곳에 가지를 뻗으면 다음 계절엔 그 위에 새잎을 돋우면 다음 계절엔 얼마쯤 키가 커서 흐린 날도 조금은 밝을까 20151107 0518. 새벽에 꿈을 깨어. ------------------------------------------------- 흐리던 날이 무서웠다. 비가 내릴까봐 잰 걸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