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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및 나만의 해설] 눈 오는 지도 - 윤동주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0. 11:25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꼬 내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 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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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해석
윤동주의 '순이'는 누구일까요?
한용운의 '님'처럼 동심원적 주인공일까요?
그렇다면 순이는
'잃어버린 사랑이고, 잃어버린 양심이고, 잃어버린 조국'일 까요?
윤동주의 고백적 서사시는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찡하게 합니다.
겉보기에는 연애시와 같지만, 그 어디에도 '순이'를 사랑한다거나 둘이 연애를 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요. 애매하게, 모호하게, 그럴듯이 심증만 남깁니다.
십여년 전 읽었을 때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라는 대목이 제 가슴을 많이 끌었습니다.
잃게 되어 슬픈 마음이 얼마큼 시리기에 방 안까지 눈이 내릴까 하는 생각에 말이죠.
박에는 하얀 함박눈이 내리고
벽과 천정도 하얗고
게다가 방 안까지 눈으로 하얗고
더구나 창 안쪽에서 창 밖의 함박눈을 바라보는 것은 밖과 안의 단절된 느낌을 줍니다.
창밖으로 나가서 잡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이 많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방 안까지 눈이 내리는'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방안을 돌아보며
순이의 부재를 슬퍼합니다.
화자의 깨끗한 마음과 하얀 색이 주는 느낌의 시림과 또 슬픔이
자꾸 그 원인을 따라가 보려도 '눈이 자꼬 내려 덮여' 찾을 수 없지요.
어쩌면 찾을 길을 잃어 그 눈이 더욱 서러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이라는 말을 하지요.
때를 기다려, 봄이 오는 때를 기다려 참겠는 의지가 보이네요.
갈 수없어 방황하던 그것을 멈추고 그 때를 기다리면 꽃이 필 것이다.
그 꽃이란 순이의 발자국 위에 피어 가야할 방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테지요.
아마도 발자국은 흩어진 민족, 애국심, 광복의 희망, 그리고 부끄러운 양심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그 꽃사이로 발자국을 찾아나선다며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의 눈은 앞에서의 눈과는 조금 다른 눈이라고 생각해요.
이 눈은 '정신을 차리게 하는 차가움'일 수 있고 '한결같은(변치 않는) 마음'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순이를 찾는 그날까지 갖게될 '그리움'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