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생각과수필] 거절의 부담(음식에, 맛에 관하여)
    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1:54

    살다보면 매우 싫어하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사람마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분은 매우 다양하지만 나의 경우는 '음식류'이다.

    다른 부분은 분명하게 좋고 싫음을, 되고 안 됨을 이야기하지만 이상하게도

    음식에서만은 '이 음식은 제가 무진장 싫어해요.' 라고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내 삶에서 즐거움을 차지하는 큰 요소 중 하나가 '먹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대로 나에게 먹는 것은 아주 큰 즐거움이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엄청나게 본능에 충실한 것 같다.

    내가 삶에서 크게 즐거움을 느끼는 몇가지 요소들 중 대부분이 본능에 충실한 것들이다.

    하나는 먹는 것이고 둘은 자는 것이고 셋은 배설하는 것이고 넷은 사랑이고

    다섯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여섯은 쓰는 모든 것이고 일곱은 보는 모든 것(잔인한거 말고)이고

    여덟은 듣는 모든 것(소음 말고)이고 아홉은 만지는, 촉감(따가운 거 말고)에 대한 것이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많겠지만 대략 크게 느끼는 것들은 이런 것 같다.

    아.. 그런데 쓰고 보니 놀랍지 않은가.

    먹고, 자고, 배설하고, 만지고, 사랑하고, 이야기하고, 보고, 듣고, 쓰는 것 모두가 본능아닌가.

    아니 그래, 쓰는 것은 빼자. 이건 학습이 없다면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럼 9개 중 8개가 본능이다. 와.......... 진짜 너무하지 않은가?

    그중에 인간의 4대 욕구라고 불리는 욕구는 다 들어가 있다.

    수면욕구, 식욕구, 배설욕구, 미적욕구. 하아.. 정말 나는 본능에 충실하구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궁금해져 동료들에게 '인간의 4대 욕구가 무엇일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생존'과 관련된 원초적인 욕구는 모두 같고 1가지만 각기 달랐다.

    우선 생존(자기보존)과 관련된 욕구인 식욕, 수면욕, 배설욕(성욕도 이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에 성욕이라 말한 경우도 여기에 넣는다.)이다.

    나머지 1가지를 이야기하는데 '명예욕, 물욕, 권력욕, 애욕, 쌍욕(장난이겠지?), 유희욕, 고통회피욕(이건..음..), 언어욕(말하고자하는)' 것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이건 다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다만,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각설하고, 따라서 나에게 처음을 차지할만큼 중요한 즐거움이 '먹는 것'이기에 다른 이의 먹는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데에서 거절의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매우 곤혹스럽다. 거절하지 못함으로 인해 큰 즐거움의 요소는 '괴로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그 괴로움을 맞는 시간이었다.

    메뉴를 제안했을 때 '그거 못먹어요.'라거나 '그거 싫어해요.' 라고 했다면 간단했을 것이다.

    단 둘이일때는 조심스레 거절할 수 있겠지만 여럿일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양꼬치 먹자.' 라고 했을 때 열명 가량의 인원 중에 많은 이가 반색을 하며 좋아하는데다 대고

    '전 양꼬치 싫어해요.'라며 그들의 침샘을 마르게 하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렇기에 잠자코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바란다면 누군가 내 취향을 알아서 슬그머니 말해주는 정도?

    하지만 어제는 그렇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후각과 미각, 촉각이 예민하다보니 '맛'에도 민감한 편이다.

    맛이라는 것은 미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은 시각이 가장 먼저 필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후각, 촉각, 미각이다.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미각때문이 아니라 코 관련 질환이 있거나 촉각에 둔감해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짜고 달고 쓴것이 미각이 담당하는 것이라면 매운 것, 느끼한 것, 텁텁한 것 등은 촉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시각은 음식을 먹거나 냄새를 맡기 전부터 사람에게 '맛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나, 이미 맛본 것이라면 그 맛을 느끼게 한다.

    후각은 '맛'에 있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감각인데, 나의 경우는 이 후각때문에 싫어하는 음식들이 특히나 많다.

    나는 '그루누이'라는 별명이 있을정도로 향에 민감하기 때문에 음식에서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음식을 먹을 때 코로 올라오는 향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차와 과일을 좋아하는데

    차와 과일은 특유의 그 향을 코를 통해 다섯차례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는 입안에 넣었을 때 코로 숨을 쉬면서 경구개쪽까지 들어간 숨에 섞인 향,

    다음으로는 코로 숨을 내쉴때 날숨과 함께 섞여 나오는 향

    그 다음으로는 후두로 넘기는 동시에 올라오는 향

    그 다음으로는 다 먹고 난 뒤 입안에 남는 향

    마지막으로는 위에서 소화가 될때까지 간간히 올라오는 향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아마도 향에 민감한 후각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일게다.

    그런 탓에 나는 향이 고약한 음식을 싫어한다.

    이때문에 싫어하는 음식으로는 기본적으로 고기가 있다. '소고기 전부, 돼지고기 부위별, 곱창대창막창, 양고기...'

    그렇다고 고기를 안먹고 살 수 없기에 보통은 닭고기의 가슴살을 먹고 간혹은 오리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오리고기의 경우 손질을 잘못하거나 하면 특유의 깃털냄새 비슷한 냄새 때문에 역겨워 먹을수가 없다.

    그 외에 간혹 돼지고기를 먹긴 하는데 돼지고기는 목살을 좋아하고 수퇘지가 아닌 암퇘지여야 한다.

    또한 닭고기나 돼지의 목살을 먹을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삶아서' 먹는걸 좋아한다.

    이유는 가장 냄새가 적기 때문이고 담백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언가를 먹고자 할 때 '고기'라는 메뉴는 거의 빠지질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모든 것을 '싫어, 안먹어, 그럼 난 빠질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억지로 먹게 되는데 그때는 정말 괴롭다.

    하지만 그래도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러 갈 땐 그나마 위안을 받을만한 것들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쌈문화가 발달했기에 쌈채소며, 쌈용 파채, 무채등이 꼭 나오고 갖가지 반찬들이 있어서

    가급적 고기는 먹지 않고 쌈용 파채와 무채, 쌈채소들과 반찬 위주로 먹으며 분위기를 맞춘다.

    그런데 양꼬치, 양곱창, 대창, 막창 등등 같은 것은.. 어휴. 완전히 단일이다. 간혹 무채나 무쌈등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 먹기엔 사람들 눈에 너무 쉽사리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음'을 들켜버린다. 정말 난감하다.

     

    '고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먹을 때 느껴지는 냄새 때문만은 아니다. 먹은 뒤의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후각은 정말... 너무 좋은건지.. 때로는 이런 내 코가 싫을때도 있다.

    내 몸은 너무 정직해서 내가 먹은 냄새가 난다.

    고기를 많이 먹은 날은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채소를 많이 먹은 날은 몸에서 향긋한 향이 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그르누이가 아니다. 그르누이는 자기의 냄새는 맡지 못하잖은가?)

    그건 배설에서도 나타나는데 소변이건 대변이건 가리지 않고 고기를 많이 먹은 뒤에는 고약한 냄새가 엄청나다.

    (커피를 마신 다음에는 소변에서도 커피향이 난다. 너무 신기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어이없어한다.)

    아무튼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내 것이지만 너무 싫다.

    소화가 다 될 때까지 위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말할 여지도 없고 말이다. 어휴.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기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싫어한다고 오해하진 말자.)

     

    미각은 차치하고 촉각을 말해보자.

    촉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알 것이다. 특히 이와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에 닿는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이 감각에 따라 음식은 더욱 맛있기도 하고 두번은 먹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가급적이면 부드럽거나 쫄깃하거나 입안을 감싸주는(착착 감기는 맛 이라고도 하는) 느낌의 것들이 좋다.

    나는 이것을 '식감'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대부분이 식감이란 표현은 알 것이다.

    식감은 촉각과 관련이 된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식감'이 맛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 음식 맛 좀 본다거나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알만한 것이다.

    나는 혀를 텁텁하게 만드는 것을 싫어해서 샐러드를 먹을때도 가벼운 느낌의 소스(발사믹같은 식초정도의 가벼움)가 아니라면

    소스를 뿌리지 않고 먹는다. 어느 때는 그 가벼운 느낌의 소스조차 혀를 텁텁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아예 그런 것도 뿌리지 않는다. 우웩, 무슨 맛이냐고? 아주 신선하고 그 채소만의 풍미를 가득 느낄 수 있는 맛이다.

    하지만 이것 조차 취향이 다른 누군가와(대부분이) 먹을 때는 내 스타일대로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냥 소스를 뿌린다. 나는 소스를 뿌리면 싫어할 뿐, 못먹는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스 없이 채소만은 못먹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너무 기름진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이 촉각때문에 그렇다.

    입안에서 겉돌듯이 미끄러지는 느낌이며, 입을 감싸고 계속 남아있는 기름의 역한 냄새와 느낌이 매우 불쾌하다.

    그게 튀김이나 전류라면 후각과 연동해 특히나 불쾌하고 들깨나 참깨 기름이거나 올리브오일 같은거라도

    향은 괜찮되 입안을 장악해버린 답답한 표피같은 느낌을 참을수가 없다.

    촉각에 민감한 것이 결코 입안만은 아니다. 선잠 상태에서 공기중의 먼지가 얼굴위에 앉는 느낌에 깨기도 할 만큼 민감하다.

    나는 촉각에 민감하다보니 얼굴에도 무언가를 듬뿍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고,

    따라서 화장을 해본 일도 성인이 되어서부터 지금까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입술이 트는 것을 방지하는 립에센스(립밤이나 립글로스)조차 바르지 않다가 최근에 바르기 시작했다.

    다시 맛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렇게 촉각에 예민한 나는 '식감'으로 분류되는 맛의 감각에도 민감한데

    위에서 말한 느끼함과 텁텁함을 빼고도 '잘 으스러짐'이라든가 '이 표면에 붙음'을 싫어한다.

    특히 너무 찐득한 찰떡이나 젤리나 카라멜, 들깨죽(하지만 이거 좋아함, 식감의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등등

    이 사이에 끼이는 것은 당연히 싫고 이 표면에 붙어 남아있을 경우 매우 신경이 쓰이고 불쾌하고 맛을 잃어버린다.

    으스러지는 것도 그렇다. 혀 끝과 경구개 사이에 음식물을 짓이길 때 퍼석 하고 으스러지며 굴러가는 느낌은 영 별로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사이에서 짓이겨질 때 으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형태를 바꾸며 슬며시 갈라지는 정도. 말 그대로 짓이겨지는 수준.

    부서지는 것(으스러지는 것)은 '어금니'가 해줘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어금니가 아닌 물러터진 혀와 조금 단단할 뿐인 경구개에 부셔지는 음식은

    맛이 아무리 좋아도 음식으로서의 매력이 확 떨어진다.

    그래서 가끔 백설기를 먹거나 카스테라를 먹었을 때 혀와 경구개 사이에서 으스러져 굴러다니는 느낌이 드는 것들은 두 번 집어먹지 않는다.

    백설기나 카스테라도 맛있는 것은 매우 쫀득하며 그저 형태를 바꾸어 짓이겨지는 수준이 되고 아닌 것은 으스러진다.

    그 이유에서 좋아하지 않는 빵도 있다. 대표적으로 페스츄리가 그렇다. 페스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드럽고 촉촉해서 좋다고 한다. 촉촉함은 수분감이 아니라 기름에 의한 느끼함인데 따라서는 '촉촉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입에 넣기 전부터 이미 으스러져서 음식 주변과 손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입안에 들어갔을때에도 그 으스러짐은 씹기도 전부터 혀와 입천장에서 시작되어 그것의 단점을 보완해줄만한 다른 반전이 없기에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전혀 엉뚱한 맛에 대하여 장황하게 쓰게 되었는데,

    맛에 관해서는 다음에 더욱 자세히 분야별로 쓰기로 하겠다.

    다만 내가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은 나의 이러한 '맛'에 대한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맛의 즐거움'을 아는 자로서

    다른이의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기에 거절하지 못하는 '먹기의 부담감'이 얼마나 곤욕인가 하는 것이다.

    위에 이야기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괴롭지만 '먹기도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매우 싫어하는 고약한 '양꼬치, 대창, 막창, 곱창' 같은 것은 아.. 정말이지..

    이런 것을 먹게 될 경우 나는 내 위에게 매우 미안해 하며 입안에 넣고 씹지 않은 채 삼켜버린다.

    남들에게 '잘 안먹네? 안좋아해? 왜 안먹어? 이거 별로야?'라는 질문을 받으며 애써 대답해야하는 불편함을 갖기 싫기도 하고

    남들이 잘 먹지 않는 내 눈치를 살피는 것도 싫기 때문에 억지로 먹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친한 사람이었다면 '응 싫어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정도의 생색은 내겠지만

    불편한 자리이거나 아직 친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자리라면 더욱 더 내 위에게 미안해지기만 한다.

     

    으... 어제도 그랬다고. 어제도.. 양꼬치를 무려.. 으으...

    아직도 위에서 냄새가 나.

     

     

     

     

     

     

     

Copyright ⓒ EomMaM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