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소개 및 나만의 해설] 찬비 내리고 - 나희덕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1:34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붙잡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나희덕, 「찬비 내리고」
화자는 꼭 이별을 예감하고 있는 것 같다.
'꽃송이'는 둘의 추억들이고 '찬비'는 이별이 불어 닥치는 '말'들이리라.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를 반복하며 리듬감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아픔의 무게를 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세 달여 전 헤어진 사람이 생각났다.
나 또한 그가 봄을 맞아 피운 꽃들에 늦가을의 찬비를 뿌렸다.
말이 많던 사람이기에 그의 말 없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말해주었다.
그래서 시의 '아프다'는 세 마디가 너무 아프다.
그 찬비로 우리는 결별했다.
나 또한 꽃을 피우고 있었기에 너무 아팠으나 나는 아프다고 비명한번 내지 못했다.
내가 준 상처들에 그는 얼마나 아플는지, 그가 더욱 괴로울까봐,
내 나름의 배려였다.
나는 모든 이별에 아름다움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말하기를 아름답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별을 해야 또 다른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별은 눈부신 것이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라고 표현한 것은 계속 붙잡고 잇을 수 없는
마음을 비유한 것이리라.
아프다며 더해간 아픔의 무게가 가슴에 맺혀있다.
화자는 맺혀있는 이 아픔의 눈물을 '저리도 눈부신가요.'라고 표현하고 있다.
모든 지나간 사랑은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이다.
이별의 순간은 매우 아프고 시리지만 결국 맺혀 떨어질 종국에는 아름답게 비칠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이별이 아닌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내리는 지금,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 옛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욱신거린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고, 내옆에 있는 이도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 말없이 찬비가 내리는 창을 보며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
- 보태어
배려의 눈물.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거나 불편하더라도 '배려'라는 것을 한다.
이 시에서 순수하게 사랑을 놓고 이야기 해보자면, 이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화자가 몇 번이나 되뇌는 '당신이 힘드실까봐'가 그것을 말해준다.
'텍스트 > 생각과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과수필] 거절의 부담(음식에, 맛에 관하여) (0) 2019.07.11 [詩] 세상은 하얗고 하늘은 파랗고 노을이 붉은날 (0) 2019.07.11 [생각과수필] 십년지기(十年知己) (0) 2019.07.10 [생각과수필] 식물의 사회성에 관하여 (0) 2019.07.10 [詩] 첫 눈 (0)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