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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사랑의 존재 - 만해 한용운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5:13
가끔 누군가에게 시를 한 줄씩 천천히 적어주면 사람들은
내가 쓰는 템포에 맞춰 천천히 읽고 나서 감동스런 음색으로 '네가 지은 시야?' 라고 묻는다.
하지만 대체로 그 시들은 만해 한용운의 시이다.
사람들이 '한용운 = 님의 침묵' 이라는 교과서 공식처럼 알아버린 사람.
그의 시는 외양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그 속은 더욱 든든하여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유일하게 낭독하기를 즐기는 시가 만해 한용운의 시이다.
내 음성을 실어 누군가에게 한용운의 시를 읊어 준 일이 한 번 있다.
그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 시의 묘한 매력을 알았던 것일까?
음성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시도 아니지만, 한용운의 시 한편을 이곳에 남긴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데 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출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 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은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님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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