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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및 나만의 해설 :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내 방에 어둠을 들였다.]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5:19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죽음'을 떠올렸다.
제목으로 미루어 '어둠'은 죽음의 상징인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은 상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만약 죽는다면'이라는 주제로
감수성 넘치던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글이 불현듯 생각났다.
- 시 전문 -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의 시 '어두워진다는 것'에서는 '시간'이 소재로 등장한다.
시간은 생(生)과 사(死)를 한 번에 상징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내가 이 시에서 '죽음'을 생각한 것은 44분에서 45분으로 넘가는 순간,
그 순간에서 '기억은 멈추어있고'라든지, 저녁이 되어 어둠이 깔리고
그 더움이 점점 깊어져야만 또다시 모든 것이 역동하는 동이 트기 마련인데
어둠은 45분 그 때보다 '더 깊어지지 않'는 다든가,
집을 가꾸고 관리하는 이는 어디 갔기에 쓰러진지 여러날이 지나도록
앞을 막고 있는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들이 그러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 어둠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느낌이고,
물속에 들어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참고 명상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시가 '죽음'을 상상해보는 것이라고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연이 그 생각을 보태주었다.
내가 죽음을 상상해보는 동안 시간도 기억도 모두 멈추어져 있었지만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지 않은가.
나의 '뼈와 살'이 말이다.
'뼈와 살'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지금껏 나를 살아낸, 나를 지탱시켜준 나의 '근본'인 것이다.
그리고 이 '근본'은 이 전에 소개한 나희덕의 시 「푸른밤」에서 이야기한 '욕망하는 것'일게다.
(나희덕의 푸른밤 해설 : http://blog.naver.com/le_poet/220572558469)
나는 마지막 두 행에서 왈칵 눈물이 났다.
잘 때마다 '잘자 지영아, 오늘도 수고 했어.'라고 스스로 말하며
왼쪽 가슴 위를 토닥토닥 해주는 그것이 떠올라서이다.
이 시가 나의 고단한 삶을 위로 하는 것 같아서, 마지막 두 행을 수 없이 되뇌었다.
'가만, 가만, 가만히'라는 부분의 리듬을 타고 나도 모르게 손을
가만, 가만, 가만히 왼쪽 가슴 위를 쓰다듬었다.
'금이 간 갈비뼈'는 삶에서 얻은 무수한 상처와 시련과 고단함이리라.
또한 각박한 삶에 치여 반쯤 잃어버린 내 삶의 '의미'이리라.
그리고 '혼자 쓰다듬는'것은 아마도 '죽음'이란 것이 '자기 자신'만이 마주해 볼 수 있는 것이기에
'혼자'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주는 자기 '근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에서 '어둠'은 곧 죽음이고, '죽음'이란 '욕망의 상실'이리라.
따라서
나희덕의 시 '어두워진다는 것'에서 어두워진다는 것, 즉 어둠을 맞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의 욕망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자기 반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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