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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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하찮다고 여기는 벌레를 죽이는 행위의 끔찍함에 대하여이티씨/내댓말들 2019. 7. 11. 11:19
갑자기 개인 일화가 떠오르네요. 그 때 처음으로 '남자도 벌레를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어느날, 거미가 지나가는데 제가 넘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며 애인에게 빨리 잡으라고 명령을 했죠. 저도 모르게 빨리 잡앗! 이라고 말예요. 애인도 놀라서 작은 눈을 토끼만하게 뜨며 절 쳐다봤어요. 한참 망설이다 그는 어디서 A4용지만한 종이를 찾아오더니 팔만 간신히 뻗어 거미를 스윽 떠내고 밖으로 내보내더랍니다. 저는 그 때, "아니 또 들어오라고 왜 안죽여?!"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말하길, "죽이는 건 끔찍한거자나." 라더군요. 그때 확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깨닫게 되기도 했어요. 어쩌면 그는 무서워서 못죽이고 저렇게 말 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그의 말에 막 웃어넘겼는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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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수필] 나는 거미줄이었다텍스트/생각과시 2019. 7. 9. 18:58
봄기운이 채 다 밀리지 않은 듯한 지난 여름, 시골집에서의 일이다. 나는 봉당에 나와 양쪽으로 좌 순이, 우 포도를 두고 두 녀석과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엄마가 싸리 빗자루를 들고 오시더니 찬찬히 이 벽, 저 벽 살피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엄마 뭐해?" 엄마는 여전히 빗자루를 꼬나쥔 채 벽 가까이 살피면서 혼잣말처럼 "어디서 거미줄을 봤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서서 엄마 행동을 주시하며 "엄마,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데 엄마는 왜 떼?"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벽을 살피다 고개를 가로 꺾어 나를 쳐다보며 "얘는 웬 해꼬빠진 소리야~ 사람한테 들러붙으니까 떼지, 왜 떼?" 그 말을 듣고 나는 엄마한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거미가 먹고 살라고 치는데, 엄마가 그거 떼면 거미가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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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거미 - 김수영텍스트/생각과시 2019. 7. 5. 11:34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은 6.25전쟁을 겪은 전후세대 작가이며 역동의 민주화를 몸으로 받아낸 시인이다. 6.25 전쟁 인민군에 강제징용이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도망치고 인민군이었다는 사실로 유엔군에 의해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되고 거기서 많은 희망과 자학을 반복하며 고통의 삶을 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치아를 모두 뽑아버리는 자학행위를 통해 희망을 버리고자 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