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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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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지하차도
    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2. 15:51

    검은 문을 두드려 열한시간 전으로

    시시콜콜 별별아닌 것을 띄우다가

    밤바람 먼지처럼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뿜는다.

     

    지하차도 입구 맞은편 포장마차

    모락모락 어묵꼬치 하나 꽂아들고

    쏘아올리는 폭죽처럼 폭죽처럼

    연신 말꽃을 퍼뜨린다.

     

    포장마차에 허리가 굽은 그림자는

    백십도로 짚은 손이 하얗도록

    어떤 불꽃을 보아서 별빛을 만들고

    수도 없이 점멸하듯 끄덕거릴까

     

    포장마차 옆으로 얼굴을 묻어버린 산발은

    달빛에 더욱 질린 머리칼만 드리우고

    누구 없어요? 차가움이 앗아가고 있어요.

    바람에 흐느적 흐느적 흐느낀다.

     

    포장마차 맞은편 지하차도 입구

    시시꿀렁한 음식물 쓰레기통 옆을 지나

    어둠끝에 맺히는 선명한 상을 향해 간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난다.

     

    201604112345

    월요일부터 깊게 술퍼마시고 걸어가는 길

    연희동지하차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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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는 십오분 가량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매번 지나는 지하차도가 그날따라 거북했다.

    맞은 편에는 평소에 없던 푸드트럭이 한 대 있었고

    손님이 셋이 있었다. 그 중 둘은 일행이고 하나는 혼자였다.

    나는 그곳까지 걸어오는 내내,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와 답답함과 원망과 한스러움과 기대와 희망과 인내와 기쁨과 벅차오름과 의지와 긍정으로

    많은 것을 교차하며 어디에도 눈을 두지 못하였다

    어디에도 숨을 쉽게 뱉지 못하였다.

    한번은 위로 전화를 걸고 한번은 아래로 전화를 걸고

    여의치 않아 열한시간 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곳으로 전화를 걸어

    시시껄렁한 몇마디를 하고 끊었다.

    포장마차에 혼자온 사람은 오뎅탕을 하나 시켜놓고 고개를 버쩍 뒤로 젖힌 채

    무얼 그리도 말하고 있을까? 그림자를 길게 뺀 저 포장마차 주인장은

    손목이 꺾이기도 오래인데 그 채로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은 무엇으로 저 사람이 그토록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하고 있을까?

    어두운 밤이라 더욱 빛나게 보이는 저 사람의 두 눈은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냥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생각을 했다.

    포장마차 옆에는 질서없이 뻗어 늘어진 것처럼 보이는 라일락 한 무더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 차가운 가로등 빛이 라일락 꽃을 두렵게 한 것일까?

    햇빛이 있을 때는 불안과 초조를 더는 듯 보였는데

    이 밤에 무엇이 무서워 저리도 시퍼렇게 질린 색을 바르르 떠는 것일까?

    월요일, 늦은 시각에 거리에는 고작 나와 그 포장마차와 이따금씩 지나는 차가 전부라서

    차가운 달빛과 차가운 바람이 흐트는 향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한참 지하차도에 들기를 막아섰다.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내 두 다리와 어둠에 홀로 있을 집을 생각해서 나는 걷기로 했다.

    앞을 보니 평소에도 지날때마다 좋아하지 않았던 커다란 음식물쓰레기통 두 개가 나란히 가로막듯 놓여 있었다.

    지하차도 안은 매우 어두웠고 음식물쓰레기통 덕분인지 불어오는 냄새도 매우 불쾌했다.

    맞은편 지하차도에서 차 한대가 지나가자 엑셀레이터가 괴성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했다.

    더러움, 두려움, 날카로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포가 그 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 뒤로는 다시 달빛과 가로등이 비추는 훤한 공간이 있었다.

    멀리 지하차도 끝에는 지하차도 안과 대조를 이루는 빛으로 그 곳의 풍경이 보였다.

    그래그래 어서 가자.

    음식물쓰레기통을 비껴 지하차도로 발을 들이는데 라일락 향기가 코끗을 부볐다.

    라일락 향기는 결국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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