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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양이의 마중 - 냥냥가정사/'일기'는 몰아서 쓰는 맛 2019. 7. 16. 15:40
굉장한 늦잠을 자고 산책을 할 겸, 느지막이 궁동공원에 갔다.
공원 초입에 들자 이녀석이 아주 멀리서부터 총총거리며 마중 나왔다.
오늘도, 지난번에도 이녀석이 계속 옆에 붙어다니는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산책을 했다.
공원이 영역이 되어버려 공원을 벗어나면 수풀 사이 높은 곳에서 잠시 내려가는 나를 바라보다가 가버리는 녀석.
삼 년 전에 처음 만났던 아주 작고 왜소했던, 겁 많은 노란 줄무늬 아기 고양이.
한번도 이 녀석을 만날 때 먹을 것을 준 적은 없지만 이 녀석은 날 알아본다.
삼 년 전, 어떤 사람에게 무척 혼나고 있을 때 도망을 치다가 이미 여러번 귀여워 해 준, 나와 마주쳤다.
당시 아기냥이었던 이 녀석이 내 바로 뒤 수풀로 숨어들었는데, 그 아저씨가 쫓아와서 막대기로 이곳저곳을 쑤셔댔다.
그 모습에 화가 나서 그 아저씨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냥 싫다는 것이 괴롭힌 이유였다.
공원이라 음식물 쓰레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피해를 준 것도 없건만 작고 앙상하게 마른 아기 녀석이 무슨 잘못이라고...
아무튼 그때 이 녀석이 안심하고 스스로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많이 쓰다듬어주었다.
본디 이 녀석은 사람을 겁내지 않았었기에 그 사건으로 사람을 무서워서 피하게 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그 해 동안 이 녀석을 종종 만났고 이듬해부터는 사는게 바빠서 못가보다 며칠 전에 날이 좋아져 산책하러 갔더니,
공원 초입을 들어서자마자 멀리서 냐옹거리며 총총총 걸어 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도 내개로, 날 알아보듯 응시하며, 야옹거리며.
어쩌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뭔가 얻어먹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날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난 한번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나만 졸졸 쫓아다녔으니까,
내가 아기냥 적에 불러주었던 것처럼 냥냥~ 하고 부르면, 냐옹~ 하고 화답하며 걸어오니까.
20160505 1749.
연희동 궁동공원 산책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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