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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수필] 있는 그대로 먹는 것텍스트/생각과시 2019. 7. 11. 15:48
언젠가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 중 '향'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오늘 하려는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다.
(우선 군밤 자랑 좀 하고..)
오늘은 퇴근이 늦지만 매우 기분이 좋다.
근 한달동안 보이지 않던 군밤아저씨가 트럭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늘 장난놀음하듯 내가 기대를 하고 현금을 갖고 나올 땐 안오시고 현금이 없을 땐 나오신다.
2월이 지나면 더이상 군밤을 안팔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나오셨기에 물었다.
"아저씨, 왜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이젠 겨울장사 끝이죠?"
아저씨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기에 몇시까지 계신지 묻고, 어쩌다보니 그 시간까지 차를 마셨다.
지갑도 없이 나온터라 잠시 망설이다가 친밀한 관계도 아닌 사람에게 현금이 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이 '밤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사주겠다고 하기에 나는 터럭, 웃으며 꽤 비싸니 빌려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5만원을 빌려달라고 하자 꽤 놀라워했다. 무슨 군밤을 5만원어치를 사냐고 말이다.
이 군밤의 향은 일품이다. 당도도, 포근거림도 일품이다.
실로, 맛보여준 모든 사람들이 매우 맛있어 했고 그 가격이 싸서 놀라워 했다.
500원 동전보다 큰 지름의 밤 20개가 5천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밤을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나 이런 고소하고 당도 높은 군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마음으로는 10만원어치 사서 넣어놓고 냉동실에 쟁여두었다 두 세개씩 꺼내먹고 싶어요."
그래, 난 그정도로 밤을 좋아한다. 특히 군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군밤을 먹으며 걸었다. 입안이 뻑뻑했지만 그보단 너무 달아서 더 힘들었다.
이 군밤은 필히 우유랑 먹어야 조화롭다. 하지만 그 정도로 달다고 느끼는 건 대게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달긴 하지만 그 정도로 달진 않은데...' 라고 했다.
본연에서 설탕에 절인 맛밤보다 더욱 깊은 단맛이 난다는 것을, 씹고 씹고 침과 섞여 또 씹힐수록
단맛이 강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너무 인공적인 단맛에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이 본연의 맛에 대한 얘기는 언젠가 다시 하겠다.)
군밤을 한입 베어물고 보니 한쪽이 썩어있었다.
정확히는 벌레를 먹어 썩은 것처럼 보인 것이다.
잠시 그 모습을 들여다보고 나는 마저 입안으로 넣고 씹어버렸다.
씁쓸하고 퀘퀘한 맛과 향이 났다.
"흠~~~"
나는 썩은 맛을 씹으면서 소리와 함께 코로 숨을 내쉬었다.
역시 퀘퀘한 향이 났다.
난 밤이나 자두나 살구따위에 벌레가 먹은 걸 봐도 부패해서 곰팡이가 난게 아니면 그냥 먹는 편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 질색을 했다.
나는 그 질색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어쩌면 그런 질색하는 모습이 보고싶어서 그냥 먹는것 같다.
반응이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벌레먹은 부위는 과일마다 맛이 다르다.
하지만 역시 좋은 맛은 아니다.
한번은 동료가 왜 다 먹는지 물었다.
"그냥요, 있는 그대로 먹는거죠. 도려내면 더 보기 나쁘잖아요. 소화되면 문제 없는데."
그들은 그 말 뜻을 알까?
군밤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이 집은 아저씨가 여유있을때마다 군밤 껍질을 까두신다. 그래서 먹기 편해 더욱 좋다.
하지만 나는 굳이 껍질을 까지 않아도 좋다. 간혹 이제 막 구웠을 때 가면 껍질을 못 깐 채 파신다.
그럴 땐 매우 기쁘다. 뜨겁게 막 나온 군밤이 속껍질에 싸인 채 모락거리고 있으면 그 군밤 속껍질의 맛이 생각난다.
아니아니, 맛이라기보단 식감이다.
사람들이 밤의 속껍질을 까고 먹을 때 나는 속껍질째 먹는다.
씹을 때마다 나는 바삭바삭 소리가 매우 좋다.
그렇다고 속껍질이 군밤 맛을 해치지 않는다.
그것은 땅콩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볶은 땅콩 속껍질을 부셔내고 먹는게 안타깝다.
볶은 땅콩의 속껍질은 밤 속껍질처럼 아주 미미하게 쌉쌀한 맛이 나지만 그 맛을 해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껍질.
생각해보니 나는 대부분의 과일껍질을 먹는다.
사과, 단감, 배, 참외 같은 걸 내 손으로 깎아 먹는 일이란,
어려운 손님을 대접해야할 때 뿐이다.
참외는 꼭지와 꽁지까지 몽땅 먹어치운다.
꽁지는 괜찮은데 꼭지는 매우매우 쓰다.
쓴 정도가 벌레먹은 썩은 맛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냥 알약을 입안으로 한웅큼 털어넣고 씹어먹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냥 다 먹는다. 그것도 참외아닌가? 참외 맛을 제대로 알려면 꼭지도 먹어야지 싶어서 말이다.
꼭지를 먹을땐 세상 끝날 것 처럼 써서 입안이 욕을 하지만 그 위에 한입 두입 참외의 포삭거리는 살결이 더해지면
점차 쓴맛은 가시면서 달고 향긋한 맛에 입은 매우 즐겁다. 아.. 나는 고진감래를 느끼고 싶은 것인가?
내가 껍질째 먹지 않는 것은 키위나 까기 쉬운 귤, 바나나, 오렌지 같은 것 뿐이다.
(레몬이나 유자 같은 것은 그냥 껍질까지 먹는다. 이것들은 대부분 차로 쓰이기 때문이다.)
키위는 정말 껍질째 먹기 거북스럽다.
한번은 키위를 껍질째 먹으려고 털을 북북 다 문질러 닦았다.
세상에! 적당히 물러 맛이 가득 벤 키위는 껍질이.. 제대로 베어물어지지 않았다.
속과 겉이 완전히 따로 놀았다. 손을 몽땅 버린다.
다른 과일들은 껍질째 먹어야 그 본연의 향과 맛과 식감을 다 즐길 수 있는 반면
키위는 못된 과일이다. 그래서 그냥 뚜껑을 따고 파먹는다. 못된녀석... 이라고 말하면서.
가끔 누군가가 단호박의 껍질, 푸른 부분을 안먹고 버리는 경우를 보면 매우 아깝다.
그 부분이 제일 맛있는데 왜 안먹는지 의아했다. 개중엔 씁쓸한 맛이 강한 녀석도 있긴 하지만..
분명 그 부분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것일게다.
그밖에 여름과일인 수박이나 포도 같은 것들은 씨와 껍질 모두 그냥 씹어먹는다.
다 먹는 이유는 맛때문이다. 솔직히 씨는 식감이 아주 좋지 않다.
한여름 제철 포도는 씨가 매우 단단해서 어금니가 나갈 지경이다.
포도를 매우 좋아하는데 한송이 다 먹고나면 오징어 한축은 먹은 것처럼 턱이 아프다.
하지만 포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3단계 맛을 위해 그냥 다 먹는다.
처음에는 톡 터지며 단맛이 난다.
다음에는 껍질 육즙이 쭈릅나면서 새콤하고 향긋하다.
그 다음에는 씨가 깨지며 쌉쌀하다.
마지막에는 껍질이 잘게 분해되면서 신맛이 난다.
아!!!! 먹고 싶다!!!
채소중에도 껍질째 먹어야 맛나는 것이 있다.
그건 뿌리음식이다. 그 중에서도
바로 무다.
요리할 때 무 껍질을 긁어 버리는 경우를 보면 경악을 하곤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오버하며 껍질까는 것을 못하게 한다.
무는 맛이 아주 약하다.(개량종 무들 말고 깍두기 담는 흰 무..)
단맛이 있지만 은은하고 시원한 맛이 있지만 부족하다.
무의 생명은 역시 껍질에 있다.
껍질이 있는 부위는 씹을때마다 아닥아닥거리며 톡톡거리는 식감이 있다.
역시 무는 껍질이지!
고구마나 감자도 당연히 껍질째 먹는다.
솔직히 이건 본연의 맛 이런건 거의 없다.
그냥 손을 쓰기 귀찮아서다.
사람들은 내게 왜 껍질째 먹느냐 씨째 먹느냐 묻는다.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기도 하고
설명해도 그걸 믿고 음미해보려는 자들도 별로 없기에
"까기 귀찮아서, 뱉기 귀찮아서"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맛보고 싶기때문이다.
포도면 포도를
수박이면 수박을
참외면 참외를
사과면 사과를
감이면 감을
무면 무를
땅콩이면 땅콩을
호박이면 호박을..
그냥 그 맛을 다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게, 꼭 먹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
그 사람은 그사람 그대로를, 좋은 모습이든 싫은 모습이든 그대로를 보고 싶다.
인위적이지 않고 감추지 않고 벗겨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체를 말이다.
억지로 벗겨내지 않고, 먹기 나쁘다고 보기 나쁘다고 도려내지 않고
그 천연의 맛으로.
나는 그래서 늘 날것 그대로의 솔직한 사람에게 끌렸다.
키위는 못됐다.
20160303 2239
잔뜩 사온 군밤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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