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가정사/'일기'는 몰아서 쓰는 맛 2019. 4. 5. 18:36
러리가 태어났다. 산부인과가 아닌 다른 곳에 검진을 갔다가 검사 결과에 표정관리 못하고 놀라는 의사 덕분에 나는 더욱 불안했다. 의사를 만난지 한시간도 안돼서 상황파악도 되기 전에, 의사결정을 할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이 나는, 무시무시한 글귀들이 가득한 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의 의지대로 순식간에 이런저런 검사와 채혈과 주사와 도핑테스트들을 거쳐 마취를 하지 않았는데도 혼란스러움에 마취한 듯 시간과 사고와 청각이 멈춘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수술실이란 글자를 보았다. "걱정마세요. 우리가 아기 무사히 안겨드릴게요. 아무래도 산소호흡기로 호흡하시는게 좋을것...." 그리고 지금 내 가슴에 안겨 있는 이 녀석이 태어난 것이다. 기특하고 고마운 녀석 건강해서 정말 다행이다. ..
-
[詩] 과거는 현재가 아님을텍스트/생각과시 2019. 4. 5. 12:32
[시] 한 봄, 몽실한 꽃가루 바람타고 두웅실 내 머리에 뺨에 가슴에, 온몸을 타고 스미듯 생각없이 떨어진 이것은 희뿌연 미소로 날아들다 어느새 그 언저리를 스치면 색도 없이 차가운, 안에 있으면 주머니 손난로 같이포근한것이 손을 모아쥐고 한달음 밖을 쫓으면 레몬을 문 듯 감기는 눈과 앙다물리는 입으로 쥔 것도 없이 서릿 하여 절로 손등을 숨기게 하지 내리기 시작할땐 가늠해볼량으로 빠져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참 내릴 땐 불구경, 마냥 즐겁게 바라보다 그치고나면 뽀닥뽀닥한 눈걸음이 가슴으로 퍼걱퍼걱 차는 것이 한참 뒤에야 질척질척한 눈거리를 처벅처벅 걷는 발걸음에 놀라 신발이 더러워질까 두려워 얼른얼른 누군가가 저멀리 쓸어버리기를 바라. 20121201 나는 왜 그런 멍청하고 역겨운 욕망에 사로잡힌 짓을 ..
-
인정가정사/'결혼생활'은 소꿉장난처럼 2019. 4. 5. 07:30
시골집 안방에 누운 게, 정확히는 내 방이었다가 안방이 된 이 방에 누웠던 게 수천 번도 넘는데 오늘 눕는 이 자리는 새삼스럽게 새롭고 설렌다. 이부자리를 봐주러 들어오신 엄마가 심드렁한 듯 별 말 없이 던져놓은 배게 하나가 나를 내내 잠못들고 이런 기분 속을 헤엄치게 한다. 내 옆에 있는 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 여기서 자는거야?" 삼십칠년여간, 바로 지난 잠지리만해도 내 옆에서 잘 수있는 (생물학적)남자로 인정 받은 건 아빠뿐이었다. 그런데 이 배게가 옆에 누운 이 사람을 인정한다. "그런가봐, 따로 말씀은 없으셨어." 나는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누웠다. 옆에 누운 이가 나를 끌어안더니 속삭였다. "나를 가족으로 인정해주시나봐. 너무 기쁘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지금 내 옆에 아빠 외에 인정..